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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최초로 만들어진 라면 이야기와 한국 라면의 전망을 알아본다. 한국과 일본 모두 시대적 배경에서 라면이 국민을 위해 만들어진 음식임을 알 수 있다. 또 이렇게 만들어진 라면이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세계인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빠르게 성장할 전망이다.
한국 '삼양라면'이 만들어진 이유
1961년 8월 24일 보험회사의 사장이던 정중윤이 사장직을 내던지고 식품회사를 차리게 됐다. 그는 어느 날 남대문 시장 골목에서 식량난에 굶주리며 무언가 사 먹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사람들이 사 먹은 음식은 바로 미군 부대가 버린 음식을 가져다 끓인 죽이었다. 당시에 버스 요금이 8원이었는데 이 죽은 5원에 팔렸다. 그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음식을 제공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일본에서 보았던 인스턴트 라면의 존재를 떠올리며 삼양식품을 세우게 됐다. 한국 인스턴트라면의 시작은 시대적 요구와 기업가적 정신이 결합한 결과로 탄생했다. 1953년 한국 전쟁이 끝난 이후 한국이 입은 피해는 막대했다. 나라를 복구하는데 100년이 걸릴 것이라는 의견이 나왔을 정도로 대부분의 국민이 극빈층이 됐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중윤 사장이 열악한 식량난을 라면을 통해 해소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겨 인스턴트 라면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갔다. 하지만 일본도 개발 생산하게 된 것이 얼마 되지 않아 정보를 얻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일본 묘조 식품의 오쿠이 사장을 만나게 되고, 정 회장의 뜻을 알게 된 오쿠이 사장이 라면의 모든 기술을 넘겨주게 됐다. 그리고 삼양식품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모든 기술적 지원과 기술자도 보내주며 삼양의 은인이 됐다. 그렇게 1963년 9월 15일 드디어 삼양은 창업 2년 만에 라면을 생산했다. 그러나 많은 노력으로 탄생한 라면은 바로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비단과 무명실이 생각나는 라면은 낯설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할 수 있는 신문광고, 전단지, 풍선광고 외에도 당시로서는 드물던 시식회까지 개최하며 공격적인 홍보를 했다. 당시 김치찌개 30원, 커피 35원으로 판매되었는데, 라면 가격은 1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됐다. 이러한 홍보와 가격 경쟁력으로 1963년 12월 20만 개의 라면이 판매되었고, 1965년 7월에는 100만 개를 돌파하며 폭발적인 성장을 이뤄냈다. 이러한 인기 비결은 정 회장의 경영력과도 상관이 있겠지만, 당시 한국이 만성적 식량 부족을 겪고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쌀 부족에 대비하기 위해 밀가루와 보리 소비를 늘리는 혼분식장려운동을 추진하며, 1966년 음식점에서 밥을 팔 때 보리를 섞도록 하고, 1967년 식당에서 국을 팔 때는 면을 섞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시대적 상황 자체가 빵이나 면 같은 분식을 장려하고 있었고, 한국인에게 그나마 익숙한 분식은 빵이 아닌 면이었기에 더 성공적인 인기를 끌었다. 1968년 1월에는 한 달 동안 1200만 개가 팔리는 등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1980년대에는 라면의 황금기라고 하는 시대를 맞이하며, 안성탕면, 짜파게티, 신라면, 팔도비빔면, 진라면 등 지금까지 인기 있는 효자상품들이 출시됐다. 이후 70년대 초반에는 잠시 출시됐던 컵라면이 유행하며 계속해서 승승장구하며 국민 식품으로 자리하게 됐다.
일본 치킨라면의 탄생기
라면의 원조인 일본도 한국과 매우 유사한 시대적 배경 때문에 라면을 개발하게 됐다. 당시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며, 국토가 초토화 됐고, 식량 생산도 줄어든 상태였다. 어느 겨울 오사카에서 한 남자가 암시장에 길게 선 줄을 보게 됐다. 사람들은 추위에 떨며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바로 포장마차에서 판매하던 따듯한 중화소바였다. 이때 이 남자는 중화소바를 공업적으로 생산할 비전을 가지게 됐다. 그는 바로 20세기 대발명이라고 불리는 인스턴트 라면을 탄생시킨 닛신의 창업자 안도 모모후쿠였다. 일본도 미국에서 대량의 밀가루 원조를 받고 있던 상황에서, 이를 이용하여 전 국민들에게 먹일 간편한 음식을 만들게 됐다. 안도 회장은 처음 이 이이디어를 갖고 후생성을 찾아갔으나 성사되지 않아 직접 개발에 나섰다. 그렇게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58년 8월 25일, 면을 튀겨 건조하고 양념을 입힌 최초의 인스턴트라면 치킨라멘을 출시했다. 닛신 식품의 치킨라멘은 등장 이후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렇게 시장에 많은 유사 치킨라멘이 등장했고, 그중에는 건조면을 만들던 묘조식품도 있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인기를 끌지 못했으나 새로운 방식인 수프가루를 넣어 조리하는 라면을 1962년 출시하며 인기를 끌게 됐다. 초기 인스턴트 라면은 면에 양념이 입혀져 있어 뜨거운 물을 부으면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도록 만들었다. 이것은 편의성이 좋았으나 맛이 단조롭다는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만들어진 수프를 따로 넣는 라면이 일본 라면 업계의 풍토를 바꾸게 됐다. 면에 양념을 입히지 않아 보관 기간이 늘어났고, 이후 출시되는 라면은 이것을 기본으로 했다. 1971년에는 닛신 식품에서 최초의 컵라면 컵 누들을 개발했다. 닛신의 안도 회장은 매일 점심 라면을 먹으면서도 96세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며 장수했는데, 그 비결은 바로 치킨라면과 매일 하는 골프 운동이라고 말했다.
한국 라면의 전망
2023년 올해 라면이 60주년을 맞이했다. 농심, 삼양식품, 오뚜기, 팔도, 풀무원, 하림 등 6개 라면회사가 지난해 해외에 연간 판매량 2조 원을 달성하며 높은 성장세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 일본, 중국과 같은 라면 강국과 경쟁하며 국내외 생산기지를 확충하고, 지속적인 품질 개발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해서 해외 유력한 유통 채널들의 러브콜을 받게 되었고, 그로 인해 라면 판매가 가속도를 붙이게 되었다. 농심의 경우 지난달 미국 창고형 매장 샘스클럽 600개 매장에서 신라면 등의 제품을 입점했다. 삼양식품은 미국 코스트코 일부 매장에 불닭볶음면을 입정 하기로 확정 지었고, 560개 지점에 진출을 목표로 했다. 이 같은 한국 라면의 선전은 지금 많은 악조건에 있는 경제 상황 속에서 주목되고 있다. 이제는 전 세계 많은 지역으로 확장해 가며 150개국의 입맛을 사로잡았고 있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개발 속에 다양한 맛의 라면 제품을 출시하며, 한국 문화를 전파해 나가는 하나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발전해 갈 전망이다.